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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고독- 이경림 시집 (창비시선)

 

급! 고독- 이경림 시집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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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째서 어떻게 무엇이 그토록 너였느냐고

나는 반백년 후에나 중얼거린다”

 

순간이자 영원, 없는 당신과 무수한 나

세계와 인간을 감싸안는 독창적이고도 깊은 통찰

 

1989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독특한 발상과 이질적인 화법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이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 급! 고독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한 지 만 30년, 시인의 생애 여섯번째 시집이다.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우연의 순간에 문득 생겨나고 움직이고 사라지는 존재들의 근원을 촘촘히 파고든다.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생(生)의 내밀한 풍경을 다채롭게 그려내며 독자를 한층 풍요로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불교의 사유를 일상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존재론적 성찰”(김수이, 해설)이 돋보이는, 독창적이고도 깊은 사유가 담긴 시편들이 매력적이다.

 

“당신은 벌써 도착했다구요?”

없는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쓰는 시

 

칠순을 넘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활달한 상상력과 실험적인 어법이 도드라지는 이경림의 시는 ‘유쾌한 발상’과 같다. 시인은 때로는 유머와 위트가 섞인 거침없는 입담으로 “위태롭고 안온해서 아름다운”(「눈이 와서」) ‘지금-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과 서로 사랑하는 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삶’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시인은 “엑스트라 배우만도 못한”(「에스토니아인 대천사의 장난」) 생을 감싸안는다. 그것은 곧 ‘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질긴 삶 속에서 오랫동안 붙들어온 질문,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뇌와 번민이 가득한, “어지러운 생각들이 잡고 가는 컴컴하고 기다란 길”(「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불립(不立)과 불면(不眠)의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이경림의 시가 오랫동안 붙들어온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삶은 진창에서 뒹구는 지렁이와 다를 바 없고, 우리는 “천지에 널린 고독 사이를 흘러다니”(「기수급고독원」)며 고독해진다. 시인은 묻는다. “아아, 그때, 우리/이목구비는 계셨습니까?/주둥이도 똥구멍도 계셨습니까?”(「지렁이들」) 

시인은 “하고많은 목숨의 윤곽들이 거짓처럼 지워져도 그 울음만은 지우지 못하는 비밀”(「발광」)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울음뿐이었던 한생을 기억해”내고 “내용도 없이 미친 이 사랑”(「습(習)」)에 기대어 비로소 존재하고 살아가고 사랑할 힘을 얻는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질기고 긴 수천갈래 길 위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아 ‘무지공처(無地空處)’를 떠도는 일, 무수히 많은 나와 네가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며 함께 존재하고 사랑하는 일, 그러다 문득 ‘급! 고독(孤獨/高獨)’을 맞닥뜨리는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일임을, 이 시집은 다채로운 목소리를 통해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전달한다.

목차

제1부

눈이 와서

서쪽

주황발무덤새

기수급고독원

앵두의 길

수선화를 묻다

비유적 분류

발광

1월

자정(子正)

직박구리들

토마토 혹은 지금

고장난 시계 사이로 내려가는 계단

지렁이들

나의 앤티크 숍 마리엔느

 

제2부

일요일은 오지 않는다

기억

만약 네가 나에게 칼 한자루를 준다면

풍선들

걸어가는 사람

개미

불립(不立) 혹은 불면(不眠)

닭죽을 먹는 동안

유쾌한 발상

Na, na

나날은 강물이 되비추는 파장처럼 둥글게 번지고 봇도랑에는 막 도착한 도롱뇽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시인 k의 하루

혈압약을 먹고 아침을 먹을까 아침을 먹고 혈압약을 먹을까

몽중(夢中)

재회

 

제3부

눈꺼풀 속의 뽀르뚜갈

전율하는 도시의 9층 유리 안에서

돌들의 다다이즘 1

직전

만찬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는 그녀를 마마라 부르고

유리, 뒤

에스토니아인 대천사의 장난

불광(佛光)

습(習)

입자들

임제가 없다

바위

영옥이라는 이름으로

 

제4부

고양이

장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정선 아우라지

다문(多聞)

누군가 이끼 낀 담벼락에 기대 흐느끼고 있었다

우중산책(雨中散策)

십정동(十井洞)

돌들의 다다이즘 2

너는 말한다

쏘가리라는 이름의 틀뢴

참 고요하시다

새재

그가 지나갔다

 

해설|김수이

시인의 말

저자 소개

이경림 시인

1947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고,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 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엽편소설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시론집 『사유의 깊이, 관찰의 깊이』 등이 있다. 지리산문학상 윤동주서시문학상 애지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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